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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의 불평등 특집 | Cover Story ] 올해 노벨 경제학상 앵거스 디턴
"부의 불평등은 성장의 원천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Deaton·70) 교수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얘기였다. 한마디라도 더 자세히 듣고 싶어 첫 질문으로 던졌다. 디턴 교수 역시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어떻게 보면 '흑백'을 묻는 말이었지만, 그의 답변은 상식적이고 온건했다.
- ▲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10월 12일 뉴저지주 프린스턴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어린 시절 경험을 얘기하며 “인생에서는 운이 상당히 중요한데, 다른 가족의 만류에도 아버지 덕분에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 나에겐 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 AP 뉴시스
"불평등 그 자체만으로는 (성장의 원천이) 아닙니다. 단서가 있습니다. 불평등은 좋은 면도 있지만 어두운 면도 있어요. 좋은 면은 사람들에게 동기(인센티브)를 준다는 겁니다. 먼저 뭔가를 이룬 사람들을 보면서 '아, 내게도 가능성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거나 혁신이 일어나 경제가 성장하면 일부는 먼저 기회를 잡지만 나머지는 뒤처집니다. 이때 생겨나는 불평등은 일종의 발전 결과로, 좋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불평등은 매우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데, 바로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몇몇 부자만이 이득을 보는 금권(金權)정치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는 겁니다. 아주 끔찍한 일이죠. 저는 결코 경제 불평등의 전폭적 지지자가 아닙니다. 저 역시 토마 피케티(Piketty) 파리경제대 교수가 걱정하는 것과 같은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피케티 교수와 저는 같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볼 뿐, 전혀 반대되는 태도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지난달 디턴 교수가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후 국내에서는 날카로운 불평등 논쟁이 벌어졌다. 디턴 교수가 작년 '피케티 열풍'을 일으킨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 교수와 대척점에서 불평등을 옹호하는 견해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피케티 교수는 작년 베스트셀러가 된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불평등을 사회악으로 단정하고 부자들에 대한 부유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전 세계 불평등 논쟁에 불을 댕겼다. 반면 국내에는 디턴 교수가 '불평등이 사회 발전을 촉진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는 대표적 학자로 소개됐다. 디턴 교수의 노벨상 수상은 피케티의 주장에 대한 주류 경제학계의 반박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후 국내 경제학계에선 불평등과 빈부 격차에 대한 두 학자의 관점이 실은 대립하지 않는다는 반론이 이어졌다. 디턴 교수의 저서 '위대한 탈출'이 국내 번역본 출판 과정에서 왜곡됐다는 논란도 나왔다. 그렇다면 디턴 교수의 진의는 과연 어떤 것일까?
지난 9일 가을이 깊어져가는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대 캠퍼스에서 노벨상 발표 이후 한국 언론 중 처음으로 디턴 교수를 직접 만났다. 그는 인터뷰 약속 시간에 딱 맞춰 거구를 이끌고 연구실로 천천히 걸어왔다. 이날은 상징인 나비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연구실 맞은편에 있는 학과 게시판에는 노벨상 수상 발표 후 프린스턴대에서 열린 기자회견 소식이 조그맣게 걸려 있었다.
불평등은 좋은 면, 나쁜 면 모두 있다
―불평등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중 어느 것이 더 크다고 보십니까?
"나라마다 다를 것입니다. 각국이 스스로 논의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불평등이 커진 지난 20~30년간 좌파는 '불평등은 나쁜 것이고, 이를 저지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우파는 '불평등이 뭐가 문제라는 거냐.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두 견해 모두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좌파의 우려도 맞고 동시에 우파의 주장도 옳습니다. 어떻게든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균형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릅니다. 이 때문에 각국 내에서 민주적 토론이 필요합니다. 제가 보기에 미국인은 유럽인보다 불평등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제가 1970년대 말에 처음 미국에 교환교수로 왔을 때 미국 사회는 불평등이라는 이슈에 관심이 적었어요. 영국인들과는 달리 미국인은 고소득자와 다른 계층 간 소득 불평등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죠. 오히려 용인하는 분위기랄까요. '아메리칸 드림' 때문이었을 겁니다. 지금은 불평등을 보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을 위해 어느 정도 안전망을 갖춰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경제학에서 아직까지도 충돌이 빚어지는 어려운 부분이죠."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요?
"이미 도구는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도 알고 있죠. 세금 인상, 공공 보건 시스템 강화, 공교육 개선 등은 이점도 있지만 비용도 많이 듭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도구(정책)가 아닙니다. 기술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입니다. 누구나 원하는 게 다릅니다. 민주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불평등이 없는 세상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지는 세상도 원하지 않죠. 그 중간에 효과적인 것이 각 나라에 있을 텐데, 이게 나라마다 다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즘 불평등의 위험에 대한 경고가 자주 들립니다. 불평등 때문에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도 합니다만.
"저는 '위기' 같은 선동적 용어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의 위기'라는 표현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표현 같잖아요. 다만 한편으론 불평등이 지금처럼 계속 빠르게 확대되면 민주적 자본주의에 위협이 될 거라고 많은 사람이 말하고 있습니다."
―불평등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커진 상황은 어떻게 보시나요?
"잘된 일입니다. 사회가 불평등에 대해 논의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아주 오랫동안 불평등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좌우가 모두 들을 수 있는 곳에서는 전혀 논의가 되지 않았죠. 저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이 더 진지한 불평등 논의가 이뤄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 앵거스 디턴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후 잠을 충분히 못 자고 있는데, 아무래도 첫 달이니까 그렇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책으로 가득 찬 연구실에서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디턴 교수는 수차례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 프린스턴(미국)=김남희 조선비즈 기자
디턴 교수는 한국에서 벌어진 논란을 의식한 듯 인터뷰 첫머리에 피케티 교수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피케티 교수와 염려하는 바가 비슷하고 반대 의견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피케티 교수가 부의 불평등을 날 세워 비판하긴 하지만, 불평등이 성장을 위해 어느 정도는 유용하다고 인정한다는 점에서도 디턴 교수와 시각이 비슷하다. 그러나 불평등을 해소할 방법에 대해서는 두 사람의 견해차가 크다. 피케티 교수는 소득 상위 1%에게 최고 80% 소득세를 물리자거나, 자산에 대해 최고 10% 부유세를 부과하자는 등 과격한 제안을 한다. 반면 디턴 교수는 꼭 집어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나라마다 해결책이 다르므로 일괄적으로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케티 교수는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매겨 빈부 격차를 줄이자고 주장했습니다.
"불평등을 완화할 공통 해결책은 없습니다. 각 국가가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각각 다른 걸 원합니다. 경제학자들이 즐겨 쓰는 말이 있습니다. '트레이드 오프(trade-off)'란 말인데, 해결 방안이 있으면 그에 따른 비용도 있다는 뜻이죠. 예컨대 세율을 소득의 90%로 올린다면 아무도 세금을 안 낼 겁니다. 세금을 안 낼 방도를 찾을 테니까요. 과거에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내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죠. 토론이 사람들의 정치적 믿음에 상당히 좌지우지된다는 게 문제 같습니다."
―저개발 국가의 빈곤 탈출을 다룬 저서 '위대한 탈출' 마지막에 '새로운 탈출은 새로운 불평등을 낳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불평등이란 어떤 건가요.
"역사를 보면 새로운 혁신은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어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애플은 삶을 더 좋게 만드는 수많은 기기를 세상에 내놨습니다. 저는 애플 기기를 이용해 다른 나라에서도 손주들과 대화하고 아이들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게 참 좋습니다. 전 세계에 있는 거의 모든 책과 음악도 접할 수 있게 됐죠. 아주 멋진 일입니다. 100년 전에는 교향악단 연주를 들으려고 며칠씩 여행을 가야 했어요. 그러지 않으면 평생 들을 기회도 없었죠. 애플은 새로운 기기를 탄생시킨 덕분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부유한 기업이 됐습니다. 애플 주주와 임원들도 부자가 됐죠. 이건 상당한 불평등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는 제가 보기엔 꽤 좋은 종류의 불평등입니다. 새로운 혁신, 즉 창조적 파괴가 새로운 불평등을 초래한 겁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속도도 빨라졌죠. 이를 멈추는 게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혁신이 필요하니까요. 물론 그래도 불평등은 조심스럽게 다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부 규제가 없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인류 전체 삶의 수준은 진보했지만, 한 나라 안에서 불평등이 커지는 현상은 어떻게 보십니까? 기업 최고경영자나 월스트리트 금융인들이 천문학적 돈을 받으면서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나 제약사 때문에 생겨나는 거대한 불균형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똑똑한 젊은이들이 이 산업으로 일하러 몰려가게 됩니다. 그들 개인적으로는 돈을 아주 많이 벌게 될 테니까 좋은 일이죠. 그렇지만 사회에는 꼭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죠."
―불평등을 논의할 때 정치의 역할은 뭔가요?
"정치는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사회에서는 내가 원하는 걸 남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남이 원하는 걸 내가 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치는 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한 방법입니다. 매우 중요한 기능이죠. 정치가 매섭고 분열적인 것도 이 때문이겠죠. 꼭 민주주의가 아니라도 모든 형태의 정치는 어떤 식으로든 갈등을 풀기 마련입니다. 그중에서도 민주정치가 효과적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이겠죠."
개발도상국, 자체 성장 모델 개발해야
- ▲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지난달 12일 디턴 교수를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소비·빈곤·복지에 대한 그의 연구를 높이 평가했다. 왕립과학원은 "복지를 증진하고 빈곤을 줄이는 경제정책을 설계하려면 우선 개인의 소비 선택을 이해해야 한다"며 이 분야 연구에서 디턴 교수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디턴 교수는 최근에는 특히 건강, 복지, 빈곤국의 경제 개발을 중점 연구하고 있다.
―선진국 경제가 저성장을 겪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빈곤과 선진국 내부 불평등에 어떤 영향이 있다고 보십니까.
"복잡한 문제입니다. 선진국의 경제성장 둔화는 모두에게 나쁜 영향을 줍니다. 환경에는 좋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경제성장이 환경 문제 대응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꼭 성장 둔화가 환경에 유익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성장률 하락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부자 나라의 경제성장이 약해지면 가난한 나라들이 물건을 내다 팔 수 있는 시장이 작아지니 안 좋은 일이죠. 경제성장 둔화는 정치에도 악영향을 줍니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한 그룹이 이득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그룹을 희생시키는 것뿐이니까요."
―저성장 시대에 개발도상국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할지 논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각 국가가 각자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중국이 특이한 방식으로 하고는 있는데, 지금보다 더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경제가 더 빠르게 성장하는 아시아와 다른 지역은 성장을 먼저 거친 선진국과는 달라야 합니다. 이들은 이미 발명된 많은 것을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컴퓨터나 전자 기기 같은 기술을 재창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개발도상국의 성장이 선진국과는 다르고 선진국보다 더 빠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추격자 어드밴티지(이점)' 효과가 증발하고 맙니다. 한국은 이제 거의 선진국에 가까워졌습니다. 한국이 미국만큼 좋은 차를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도 새로운 성장 모델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입니다. 경제성장이 완전히 새로운 것에 달려 있고 그 새로운 것을 스스로 생각해내야 하니까요. 한국은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일원이며, 더는 '따라잡기 성장'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교육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한국에는 교육을 잘 받고 똑똑하고 유능한 인재가 많습니다. 한국이 스스로 길을 찾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탈리아는 물건을 자기만의 것으로 다르게 만들기로 유명한데, 한국을 '동양의 이탈리아'라고도 하더군요."
―한국에서도 빈부 격차가 확대되면서 계층 간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사회의 적극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한국은 큰 경제성장을 이뤘고 삶의 수준이 크게 개선됐습니다. 그러나 뒤에 남겨진 사람도 여전히 많습니다. 저는 먼저 성공한 사람들이 자기 삶의 수준 향상이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라에 빚진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뒤에 남겨진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건강관리와 교육 개선에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원조 효과 없다… 북한 원조 효과도 회의적
개발 경제학의 선구자인 디턴 교수는 개발도상국 원조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원조는 저개발국에 만연한 부패를 부추기고 독재 정부의 배만 불린다는 이유를 든다. 그는 "질병 퇴치에 쓰이는 일부 원조는 효과가 있지만, 과도한 원조는 부정적 결과가 크다"고 했다.
―원조가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고 경제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도 많습니다만.
"저는 원조가 경제성장을 일으킨다는 증거를 본 적이 없습니다. 학자들이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연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원조가 경제성장을 늦춘다는 증거는 있지만, 더 빠르게 성장하게 만든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래서 최근 원조 사업의 방향이 보건 관련 원조로 더 많이 옮아가고 있습니다. 보건 원조가 생명을 구한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과도한 원조가 부정적 결과를 낳은 예 역시 많습니다."
―그렇다면 원조 수혜국에 대한 단순 재정 지원이 아닌, 구체적 프로젝트 단위의 원조 효과는 어떻게 보십니까.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 원조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효과가 없습니다. 세계은행이 프로젝트 단위 원조에 대한 지원을 끊었을 정도로 비효율적입니다. 원조 과정에서 부패가 들끓고 효율적인 진행이 어렵습니다. 나라 전체 경제가 엉망인 상황에서 프로젝트 하나로 상황을 개선한다는 생각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한국에서는 북한 원조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합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결국 독재자에게 흘러갈 지원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독재자의 생존을 돕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아프리카에는 질이 나쁜 독재자가 많습니다. 이런 나라에 원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끝없는 논쟁이 이어지죠. 원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어린이의 생명을 구한다는 논리를 듭니다. 독재자가 싫다고 해서 아이들을 내팽개칠 거냐는 것이죠. 반대쪽에서는 결국엔 독재자가 아이들에게 가야 할 돈을 가로채 자기 배를 불린다고 반박합니다. 북한에서는 북한 정부를 거치지 않고 북한 주민을 지원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북한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니까요.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이웃 가정의 남편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아내를 때린다면 그 아내가 불쌍하다고 느끼겠죠. 그래서 그 아내에게 돈을 준다면 그 돈은 고스란히 남편이 빼앗고 아내를 계속 때릴 겁니다. 결국 남편 좋은 일만 해주는 꼴이 됩니다."
―세계은행이 지난달 공식 빈곤선을 하루 소득 1.25달러에서 1.90달러로 올렸습니다. 적절한 조치라고 보십니까.
"현실을 조금 더 반영했다는 면에서는 좋은 시도라고 봅니다. 그러나 빈곤 측정 방식에는 여전히 문제가 많습니다. 국가 간 생활수준을 비교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자료도 여전히 부족하고, 우리가 모르는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단순히 소득이 아니라 빈곤의 다른 측면을 측정하는 데 더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예컨대 건강과 영양 상태 같은 것입니다. 인도는 국가 전체의 부는 상당히 늘었지만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이가 많습니다. 나라 경제 규모가 커졌다고 손뼉을 칠 때가 아닙니다. 다만 빈곤과 불평등은 다릅니다. 빈곤은 바닥층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불평등은 다른 계층 간 또는 개인 간 차이를 말합니다. 부자에게 더 많이 주면 불평등이 커지지만 빈곤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빈곤과 불평등은 서로 관련이 있지만 같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관심 있었던 건 개개인의 삶"
40년에 걸친 디턴의 연구… 거시 데이터 중시했던 때 미시 분석
불평등에 대한 연구가 한국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지만 40여 년에 걸친 앵거스 디턴 교수의 연구 분야는 이외에도 소비, 건강, 복지, 빈곤, 경제 개발 등 다양하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디턴 교수는 소비자가 다양한 제품 사이에서 지출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사회의 소득은 얼마나 지출되고 얼마나 저축되는지, 복지와 빈곤을 어떻게 가장 잘 측정하고 분석하는지 등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중심으로 연구했다"고 설명했다.디턴 교수의 가장 큰 학문적 공적(功績)은 가계 조사를 통해 수집한 개인별 소득·지출 등 자료를 실증적으로 분석해 소비와 빈곤을 측정하고 미시(微視) 경제학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디턴 교수는 거시적 데이터를 중시하던 풍토에서 미시적 자료를 모으고 이를 실증 분석에 활용한 미시 경제학의 대부(代父)"라고 평했다.
디턴 교수는 스스로를 "경제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는 1945년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헌신적 아버지 덕분에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는데,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처음엔 수학을 전공했다가 경제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연구 분야 범위가 아주 다양하십니다.
"영국에서는 미국처럼 거시(巨視) 경제나 미시 경제, 개발 경제 등 한 분야에 집중해야 하는 압박이 없었습니다. 또 경제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기에 그저 제가 관심이 있는 것을 연구했어요. 제게 '어떻게 전문 분야가 없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여러 분야를 연구한 것은 이점이 됐습니다."
―소비와 행복 등을 측정할 때 전체가 아닌 개인에게 초점을 맞췄습니다. 왜 그런 건가요?
"결국 삶이란 한 사람 개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소득이나 빈곤을 측정할 때 한 나라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삶입니다."
디턴 교수는 영국과 미국 국적을 가진 이중국적자다.
1974년 케임브리지대에서 '소비자 수요 모델과 영국에 대한 적용'이란 논문으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6~1983년 영국 브리스틀대에서 교수를 지냈으며 1980년에 존 무엘바우어 현 옥스퍼드대 교수와 함께 수요와 가격, 소득의 관계를 다룬 '준이상수요체계(AIDS)' 논문을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AER)' 저널에 발표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83년 프린스턴대 교수로 부임해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그는 "영국에서 학업을 끝낸 후 미국으로 간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당시 재직했던 영국 대학교에 심각한 자금 문제가 있었던 것이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디턴 교수의 아내(앤 케이스)도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다. 디턴 교수의 연구실에서 한 칸 건너 옆방이 케이스 교수의 연구실이다. 디턴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 이후에 아내 케이스 교수와 함께 미국 백인 중년의 사망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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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사람 인터뷰 할 수 있었는데…”
지난 10월 12일,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미국 프린스턴대의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교수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던 김남희 기자가 못내 아쉬운듯 혀를 찼습니다.
김남희 기자는 이전부터 디턴 교수를 유력한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보고 인터뷰를 추진했었는데, 출장 일정이 잘 맞지 않아 계속 뒤로 밀린 상태였습니다.
“이제 노벨상을 받았으니 전 세계에서 인터뷰 요청이 쏟아질텐데… 뭐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니 인터뷰 요청서라도 보내봐야지.”
김기자는 혼자말로 투덜거리면서 노트북을 열고 바로 메일을 보내더군요.
사실 아쉬움이 컸습니다. 특히 그후 디턴 교수의 저서 ‘위대한 탈출’의 왜곡 논란이 벌어지면서 직접 인터뷰를 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죠.
한데, 3주 정도가 지나 토요일이던 10월 30일, 디턴 교수로부터 생각지도 않았던 답장이 왔습니다. 11월 9일에 인터뷰를 하자는 겁니다. 정작 인터뷰를 신청했던 김남희 기자를 포함해 저희가 더 놀랐는데, 미국으로 달려간 김기자에게 디턴 교수는 “믿을 만한 매체인지, 그리고 믿을 만한 기자인지 미리 알아봤으니 그점은 기분나빠하지 말고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 디턴과 ‘위대한 탈출’ 왜곡 논란
지난 주(11월 14~15일자) 위클리비즈는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의 인터뷰와, 그의 수상 이후 논란이 된 ‘부(富)의 불평등’ 문제를 다룬 특집이었습니다.
[Weekly BIZ] 불평등 논쟁하라, 더 치열하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매년 나옵니다만, 올해의 노벨경제학상이 특별히 주목을 끈 것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번역판 왜곡 논쟁 때문일 것입니다.
이 문제는 지난 10월 19일자 에디터레터의 후반부에도 다룬 일이 있습니다.
[위비에디터 레터] "그래도 롤스로이스는 영국자동차"라는 독일 자본
문제의 출발은 작년에 벌어진 피케티 열풍입니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는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불평등을 구축(驅逐)해야 할 사회악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일해서 버는 사람보다 물려받는 사람(가진 돈으로 돈놀이를 하는 사람)이 돈을 더 잘버는 상황이 계속됐다고 주장했죠. 이른바 ‘세습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자유를 중시하는 주류 경제학 쪽에서 보면 능력이나 부의 불평등은 더 잘 살려 하는 의욕을 만들어내는, 발전의 원동력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에 반박하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로 제시된 것이 바로 이 앵거스 디턴의 책인 ‘위대한 탈출’ 이었죠.
위대한 탈출은 인류가 어떻게 궁핍과 죽음에서 탈출하고 삶의 수준을 향상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책 제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위대한 탈출’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당시 국내판 출판사측에서는 책에 끼워 나오는 띠지에 ‘피케티 vs 디턴’이라는 글귀를 적어넣고 부제도 ‘건강, 부, 그리고 불평등의 원천’에서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로 바꿔 냈습니다.
출간 당시에는 큰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던 이 번역판은 디턴 교수가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논란에 빠집니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피케티와 대립각을 세운 디턴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주류 경제학에서 피케티를 배척한 것이라는 식의 해석을 냈는데, 경제학계에서 이에 대해 이의가 제기된 것이죠. 디턴 자신은 여러번 피케티의 연구를 높이 평가했고, 디턴의 주장은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피케티와 실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견해도 나왔습니다.
특히 국내판 ‘위대한 탈출’은 디턴과 피케티의 입장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전체 취지에 맞지 않는 국내판 서문을 집어넣고 부제를 포함한 일부 제목을 마음대로 바꿨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쉽게 말해 피케티의 논리에 맞서기 위해 디턴의 저서를 출판사의 취향(불평등을 옹호하는)에 맞게 ‘왜곡편집’했다는 취지의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출판사측은 길이를 줄이는 과정에서의 누락일 뿐이지 왜곡의 고의성은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결국 이 책은 다시 재번역 출간이 결정됐죠.
이 과정에서 ‘디턴의 진의’는 과연 무엇인가가 궁금해졌었습니다.
◆ 사실 평범했던 디턴의 답변
위클리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디턴 교수는 속시원하게 ‘누가 옳다’는 판정을 내리진 않았습니다.
실제로 김남희 기자가 만난 그는 매우 온건한 ‘상식인’이었고 마음좋은 할아버지였다고 합니다.
인터뷰 자리에서도 “노벨상 받으러 ‘스웨덴’으로 상을 간다고 하니 손주들은 ‘스위스’로 가는 줄 안다”며 손주 얘기에 여념이 없었고, 다음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저서를 전달하러 간다며 기뻐하는(그는 정치적으로 오바마를 지지한다고 합니다. 미국 대통령은 3선이 불가능하지만 3선을 했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했다고 합니다),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대답 역시 사실은 평범하고 상식적이었습니다.
“불평등엔 좋은 면도 있고 나쁜면도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동기(인센티브)를 만들어주지만 지나치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금권정치가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
중요한 것은 각국 국민들이 어느 정도 불평등을 감내할 수 있을지인데,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라 국내에서 민주적인 토론이 필요하며 남의 나라 사람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피케티와의 대비에 대해서는 “그가 걱정하는 것과 같은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그와는 같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볼 뿐 반대되는 태도를 가진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기자들 입장에선 불평등문제에 대해 날서고 딱부러지는 결론은 없다는 것은 아쉽기도 했습니다.
2면에는 디턴 교수의 삽화가 들어갔습니다. 박상훈 기자가 밤 늦게까지 작업을 해준 파스텔톤의 그림입니다. 2면 편집을 담당한 박은성 기자는 “약간 색이 흐린 것 같지 않아요?”라고 말했는데, 옆에서 보던 온혜선 기자가 웃으면서 한마디 합니다. “디턴 교수 주장도 그리 선명하진 않은데, 어울리는 그림이네요.”
사람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 단순하고 딱부러지는 논리로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택하는 길은 언제나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두 입장 어느 중간에 있을 것이죠. 그런 ‘상식’을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기본적으로 디턴 교수의 연구 중 ‘불평등’ 부분은 일부에 불과한데, 초점을 맞춰야 할 다른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이 나옵니다.
◆ 부의 불평등 특집
디턴 교수의 인터뷰가 있었던 그날, 영국 런던에서는 세계 경영학자들의 랭킹을 발표하는 ‘싱커스50’ 행사가 열렸습니다. ‘경영학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부르는 이 상은 2년에 한번 열리죠. 한데 이날 행사에서도 한 토론 주제가 ‘부의 불평등’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워낙 경영 석학이 많이 오는 자리이므로 이혜운 기자와 배정원 기자 두 사람을 보내 참석자들을 여러 사람 인터뷰했습니다. 그중 불평등에 관한 기사를 4~5면에 적었습니다.
[Weekly BIZ] 극빈층, 자율 시스템으론 극복 못해…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해소 가능
[Weekly BIZ] 공유경제는 불평등 해결의 혁신 모델… 중산층 이하 사람들 삶의 질 향상될 것
[Weekly BIZ] 자본주의 자체를 개선하는 것보다 부자들의 자발적 움직임으로 해결을
[Weekly BIZ] 최근 남녀간 富의 불평등 부각… 회사 내 여성 역할 중요성 이해시켜야
사실 간단히 기사가 나가긴 했습니다만 소개된 분들은 모두 위클리비즈의 커버스토리에 나오실만한 분들이죠. 이날 인터뷰한 다른 석학들의 기사도 차례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마지막 면에는 불평등과 관련된 국내의 글을 소개했습니다.
[Weekly BIZ] 한국, 60여년 전에 비해 餓死위험 줄어… 성장은 貧者위해서도 필요
[Weekly BIZ] 부자에 대한 미움과 부러움이 인간 본성… 부러움이 빈곤 탈출에 필요한 에너지
[Weekly BIZ] 성장이 달리기라면 불평등은 몸의 피로… 불평등을 인정하되 크게 확대되지 않게 해야
다양한 입장의 글을 실으려 했는데, 디턴 교수의 ‘위대한 탈출’ 서문을 쓰셨던 현진권 자유경제원장님의 글도 직접 실었습니다. 디턴교수의 입장과 다르다는 논란이 일었습니다만 디턴 교수의 진의를 직접 들었듯이, 직접 목소리를 듣는 것이 좋은 토론의 장을 세우는 일이 될 것 같아 부탁드렸습니다. 진의가 많은 분들께 잘 전달됐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디턴 교수의 인터뷰는 보통때보다는 직역에 가깝게 번역을 했습니다. 논란이 있었던 내용이라 혹시모를 오해를 피하기 위한 것인데, 독자 여러분들 읽으시기에 문장이 조금 거칠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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