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주변을 서성이는 돈이 늘고 있다. 주식형 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랩 어카운트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 CMA 잔고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무섭게 시중자금을 흡수하던 정기예금 증가세는 주춤하고 있다. 증시 진입을 노리고 대기하는 자금이 570조원이라는 추산까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스피지수가 1800선을 바닥으로 확인하면 시중 부동자금이 증시로 몰려들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CMA 등으로 몰린 돈이 증시로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는 비관적 분석도 있다.
◇CMA 잔고 왜 급증하나=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외 주식형 펀드에서 3조5208억원이 빠져나갔다. 6월 2조8825억원보다 유출 규모가 더 커졌다. 펀드 대량 환매 행렬은 올 들어 1월, 4월, 6월에 이어 4번째다.
주식형 펀드에서 대규모 돈이 유출되는 동안 증권사 CMA 잔고는 증가세가 확연하다. 1월 말 37조196억원이었던 CMA 잔고는 4월 말 41조3227억원으로 4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달 22일에는 43조299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종전 최고치는 4월 28일의 42조4043억원이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채 연 2%대 금리라도 얻으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자금이 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시장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해 언제든지 돈을 뽑을 수 있는 CMA에 자금을 넣고 관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 예금 증가세가 주춤한 점도 증시 대기자금이 늘고 있다는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국민·신한·우리·하나·외환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의 총 수신 잔액은 지난달 말 현재 658조2353억원으로 전월 말보다 1조1518억원이 줄었다. 5월 14조3721억원이 늘었지만 6월에는 4조2957억원이 증가하는 데 그쳤고 지난달에는 기준금리 인상에도 석 달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정기예금 증가세는 둔화되고 있다. 지난달 중 정기예금은 금리인상에 힘입어 6조1724억원이 늘었지만 증가 폭은 5월 10조9149억원, 6월 8조5064억원 등으로 낮아지고 있다.
교보증권 주상철 연구원은 “시중 단기 부동자금 규모가 수시입출금식 예금과 6개월 미만 정기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등을 합쳐 570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아직 시장은 확신이 없다=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증시에 투자자금이 몰리는 ‘유동성 랠리’가 시작될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는 점, 미국과 중국 증시가 바닥권에서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는 점, 외국인의 우리 증시 매수 폭이 커지고 있는 점 등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다만 1800선이 지지선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대기자금이 증시로 흘러들어올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금융투자증권 서준혁 애널리스트는 “증시에서 나간 돈은 지난 2년 동안 물렸다가 떠난 것이라 돌아오기 힘들다고 본다. 가장 환매 물량이 많이 몰려 있는 1800선에서 시장이 (상승 흐름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우증권 김정환 연구원은 “하반기 경기가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하다. 현재는 예탁금이나 거래대금이 증가한 것이 아니고, 증시의 고점만 높아진 상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