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치광이 전략' 배후는 '진짜 미치광이' 나바로
조선일보 뉴욕=오윤희 특파원 음성으로 읽기기사 스크랩 이메일로 기사공유 기사 인쇄 글꼴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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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11.16 03:03
무역분쟁 백악관 노선투쟁 주도 "對中교역, 核만큼 미국에 위협"
선거할 때는 네거티브로 악명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이 지난 3월 백악관 외교접견실에 입장하고 있다. 미 경제 전문 매체 CNBC는 14일(현지 시각) 백악관이 나바로의 역할을 축소하는 문책성 조치를 취했다고 보도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이 지난 3월 백악관 외교접견실에 입장하고 있다. 미 경제 전문 매체 CNBC는 14일(현지 시각) 백악관이 나바로의 역할을 축소하는 문책성 조치를 취했다고 보도했다. /AP 연합뉴스
미국 백악관 내부에서 미·중 무역 전쟁을 둘러싼 치열한 노선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무역 전쟁의 설계자이자 강경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이 연일 강성 발언을 이어가자, 협상파로 꼽히는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이 그를 대놓고 비판하며 견제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미 경제 전문 매체 CNBC는 14일(현지 시각) 백악관이 나바로의 대외 역할을 축소하는 문책성 조치를 취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9일 나바로는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간담회에서 "중국 정부의 환심을 사려는 월가의 금융인들이 트럼프를 압박해 중국과 무역 합의를 이끌어 내려 하고 있다. 그 합의에선 악취가 진동할 것"이라고 했다. 나바로는 심지어 월가 금융인들을 "(중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미등록 외국 요원(unregistered foreign agents)"이라고 비난했다. 커들로는 이런 나바로를 공개 저격했다. 13일 CNBC에 나와 "나바로의 발언은 완전히 잘못됐고, 그는 대통령에게 커다란 해를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이 미·중 무역 전쟁의 노선 투쟁에서 나바로의 역할을 축소하며 커들로의 손을 들어준 모양새를 취한 것은 미 정부가 오는 30일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달 30일부터 이틀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면담을 갖고 무역 전쟁 해법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무역 전쟁 노선 투쟁에서 나바로의 패배로 결론난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백악관 내부에서 나바로만큼 트럼프의 '귀'를 확실하게 붙잡고 있는 인물이 드물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진행되고 있는 미·중 무역 전쟁도 '중국이 지난 20여년간 미국을 벗겨 먹었다'는 나바로의 중국관, '무역 전쟁이 일자리를 미국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그의 무역관이 트럼프에게 먹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월간지 애틀랜틱은 나바로를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madman theory) 배후에 있는 미치광이"라고 표현했다.
나바로가 트럼프와 찰떡 호흡을 자랑하는 데는 둘의 비슷한 성향도 한몫했다.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나바로는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캠퍼스 경영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샌디에이고 시장, 시의회 의원, 주(州) 하원의원 선거 등에 세 번 출마했다가 모두 고배를 마셨다. 이때 그는 공격적인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샌디에이고에서 출마한 역대 후보 중 가장 잔인하고 비열한 개자식"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당시 나바로의 선거 캠페인 관계자는 애틀랜틱에 "트럼프가 워싱턴 정가에서 나쁜 놈 1위가 아니라면, 아마 1위는 나바로일 것"이라고 했다.
나바로는 중국에 대해 공격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Death by China)' 등 저서에서 그는 미·중 경제 교역은 핵 공격만큼이나 미국에 위협적이지만, 미국 기업들은 이런 문제를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바로의 이러한 생각은 트럼프의 견해와 딱 맞아떨어졌고, 트럼프는 대통령 선출 뒤 국가무역위원회를 만들어 나바로에게 위원장직을 맡겼다.
하지만 나바로의 과격한 아이디어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게리 콘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에 의해 제동이 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의 저서 '공포(Fear)'에 따르면, 콘은 트럼프가 나바로의 영향을 받아 작성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문건을 대통령의 책상에서 훔치기까지 했다.
이들의 견제로 나바로의 국가무역위원회는 폐지됐지만, 트럼프의 귀를 사로잡으려는 나바로의 노력은 꺾이지 않았다. 애틀랜틱은 "나바로가 백악관 주변을 몇 시간 배회하며 트럼프와 밀회할 기회를 포착했고, 트럼프를 자신의 편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올해 3월 그의 상관이던 게리 콘이 국가경제위원장직을 사퇴하면서 나바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정책을 완전히 장악하게 됐다.
나바로의 입지가 줄었다고 하더라도 CNBC 등 미 언론들은 그가 백악관을 떠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나바로는 트럼프가 "나의 피터"라고 부를 만큼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며, 트럼프와 나바로가 주류 엘리트에 대한 반감과 중국은 적(敵)이라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바로가 얼마나 트럼프를 사로잡느냐에 따라 무역 전쟁이 언제든 뜨거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16/20181116001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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