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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심리학, 루틴

정석_수학 2012. 5. 8. 07:00


http://sports.media.daum.net/baseball/news/breaking/view.html?cateid=1028&newsid=20120508060317779&p=sportskhan




정확한 찬호씨, 5시18분이면 그가 뜬다


스포츠경향 | 김은진 기자 | 입력 2012.05.08 06:03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인간시계'였다. 동네 사람들이 칸트가 산책하며 지나가기를 기다려 고장난 시계를 맞출 정도로 매일 정확하게 시간을 지켜 생활했다. 철두철미한 자기관리의 대명사다. 


한화에도 '칸트'가 있다. 적어도 박찬호(39·한화)가 등판하는 날에는 시계를 볼 필요가 없다. 


박찬호는 항상 경기 시작 1시간 12분 전에 그라운드로 나와 13분 동안 몸을 푼다. 


■5시18분 등장 → 5시31분 퇴장 



박찬호는 오후 6시30분에 경기를 시작하는 평일에는 5시18분에 그라운드에 나타난다. 오후 2시에 경기를 시작하는 토요일과 공휴일에는 12시48분이 '쇼타임'이다. 


개막 이후 등판한 5차례 경기 가운데 3경기가 6시30분, 2경기가 2시 경기였다. 박찬호는 5번 모두 이 원칙을 지켰다. 


행동 패턴도 똑같다. 덕아웃에서 나와 1루 혹은 3루 응원석 앞을 지나 외야로 이동한다. 평일 5시18분, 공휴일 12시48분은 관중들이 박찬호의 등장에 함성을 지르는 시각이다. 


이어폰을 꽂은 채 음악을 들으며 외야 펜스 앞에서 먼저 몸을 푼다. 허리와 다리 위주 스트레칭이다. 다리를 길게 벌려 걸으며 상체를 좌우로 비틀어 푸는 식이다. 


그 다음 가볍게 2~3차례 러닝을 한다. 그렇게 12분이 지나면 천천히 걸어 외야에서 덕아웃으로 이동한다. 


덕아웃에 다다르면 13분째. 평일에는 5시 31분, 공휴일에는 1시 1분이 된다. 


라커룸으로 들어간 박찬호는 6시 정각이 되면 다시 나와 불펜포수와 공을 던지고 덕아웃에서 경기를 준비한 뒤 6시30분에 등판한다. 


등판일마다 라커룸 밖에서 정확한 시간에 벌어지는 박찬호의 일과다. 


■스포츠심리학, 루틴 


박찬호의 시즌 첫 등판은 지난 4월12일 두산전이었다. 당시 첫 등판을 앞둔 박찬호가 5시18분에 그라운드에 나타나자 인터뷰 중이던 두산 외야수 김현수는 "이렇게 빨리 나오신 걸 보니 박찬호 선배님도 긴장하신 모양"이라고 말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긴장한게 아니었다. 


박찬호는 "루틴이 있다. 메이저리그 때부터 그렇게 해왔다. 일찍 나와 외야에서 몸을 풀고 경기 시작 30분 전 워밍업을 한다"고 말했다. 


박찬호가 말한 '루틴'은 스포츠심리학 용어다.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대 능력을 낼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 하는 습관적인 행동 절차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일정한 행동을 통해 집중하면 긴장을 잊을 수 있다. 삼성 외야수 박한이가 타석에 들어서 장갑을 다듬고 모자를 벗은 뒤 냄새를 맡고 방망이로 바닥에 선을 긋는 행동이 대표적이다. 


박찬호에게는 경기 시작 1시간 12분 전 나와서 13분 동안 스트레칭을 하고 들어가는 것이 등판 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방법인 셈이다. 


■철저한 자기관리의 증거 


단순한 습관 이상이다. 매번 정확한 시간에 같은 패턴으로 운동하기란 지키기 쉬운 일이 아니다. 


선발투수는 경기장에 가장 늦게 나타나는 선수다. 홈 경기일 때는 아예 늦게 출근하고, 원정경기일 때는 선수단 버스 안에서 휴식하다 천천히 경기장에 나온다. 보통 선발투수들이 경기장에 나와 몸을 푸는 것은 경기 시작 30~40분 전이다. 김현수가 "긴장하셨나보다"고 오해할만 했다. 


박찬호는 다른 선수들이 대부분 쉬는 시간에 일찍 나와 자기만의 시간표를 지키며 리듬을 조절한다. 더구나 매번 1분도 어김없이 정확하게 운동하고 들어간다. 그만큼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한다. 


한화 선수들의 심리 상담을 맡고 있는 이건영 심리코치는 "루틴은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하는 멘탈 기술이다. 자신을 통제하기까지는 최소 6개월 이상 걸리고 야구같이 복잡한 운동에서는 그 이상이 소요된다"며 "선수들이 루틴을 이해하긴 하지만 제대로 실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박찬호는 루틴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선수다. 지금도 끊임없이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