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화폐사를 보면 달러와 금은 항상 주도권 전쟁을 벌여왔다. 먼저 패권을 잡았던 것은 금이다. 금은 그 태환성(兌換性)뿐만 아니라 희소가치 때문에 화폐로도 각광받았다.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신생국 미국은 1792년 화폐를 금 및 은과 연동시키는 사실상의 금본위제를 채택했다. 세계 각국도 경쟁적으로 금본위제를 채택했다. 자본주의 체제가 확대되면서 더 많은 화폐가 필요했고, 이는 더 많은 금 수요로 이어졌다.
하지만 금 본위제의 결정적 약점은 발행할 수 있는 화폐의 양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화폐수요는 증가하지만 유통량이 제한되기 때문에 오히려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역설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면서 기축통화가 부상한다. 기축통화는 해당 국가의 경제적 영향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영국 파운드화가 기축통화 역할을 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기반이 됐다. 1860~1914년 50여년간 세계 교역의 60%가 파운드화로 결제됐다. 1913년 기준으로 세계 외환보유고에서 파운드화의 비중은 48%에 달했다. 그러나 세계 1차대전 종전과 함께 영국 경제가 몰락하면서 1919년 영국은 파운드화의 금태환을 중지했다.
세계 2차대전을 거치면서 세계를 경제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제패한 미국은 새로운 금융질서를 확보할 필요를 느낀다. 1944년 브레튼우즈에 모인 44개국 대표들은 "미국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고 다른 나라 통화는 달러에 연동시킨다"는 이른바 브레튼우즈체제에 합의한다. 브레튼우즈체제는 달러를 금과 고정비율로 태환할 수 있게 하고 다른 통화들은 금 대신 달러와 고정환율로 교환할 수 있게 한 '달러 기축통화제'였다. 이때부터 달러는 기축통화가 됐고 금 1온스당 35달러에 고정됐다.(골드풀)
달러 기축통화제는 베트남 전쟁 등을 통해 미국의 재정적자가 심화되면서 서서히 붕괴의 조짐을 보인다. 71년 영국은 미국에 30억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것을 요구하지만 미국의 닉슨 정부는 이를 거부한다. 이른바 '닉슨 쇼크'다. 달러가치를 금에 연동시킨 달러-금 본위제가 완전히 폐지된 것은 1973년 골드풀제도가 붕괴되면서부터다. 골드풀이 무너지면서 세계 각국은 자국통화를 시장에서 자유롭게 교환하는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기 시작했다. 금값이 곧 달러값이고, 달러값이 곧 고정환율이 됐던 시스템에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30년 가까이 유지됐던 달러 패권시대는 이렇게 힘을 잃어갔다.
현재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55t쯤 된다. 이를 영란은행(Bank of England) 지하금고에 보관해두고 있다. 한국의 전체 외환보유고 중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0.7% 수준이다. 전 세계 중앙은행 평균 11%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은행 입장에서 금을 많이 보유한다는 것은 분명 리스크다. 금은 가격변동성이 크고 보관하는 데도 비용이 든다. 그래서 외환보유고에서 차지하는 금의 비중을 무작정 늘리기는 힘들다.
그러나 통화당국은 강(强)달러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달러화 폭락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염두에 둬야 한다. 달러화 폭락이 현실화된다면 한국처럼 실물자산의 비중이 적을 경우 그 충격을 고스란히 안을 수밖에 없다. 금과 같은 실물자산으로 충격을 완화하는 장치를 마련해두어야 하는 이유다. 지금 수준의 금 보유량과 비중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