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윤경수(33)씨는 일주일에 한 번 집 근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집에서 여의도에 있는 회사까지 매일 출퇴근하다 보니 기름 값에 민감한 편이다. 윤씨는 최근 들어 ‘기름 값 미스터리’가 생겼다고 했다. 그는 “뉴스를 보면 국제유가는 큰 폭으로 떨어지는데 휘발유 값은 조금 내리는 게 이상하다. 주유소들이 이익을 챙겨서 그런 게 아니냐”며 의아해했다. 실제로 올 10월만 해도 100달러대였던 국제유가는 이후 바닥을 모르듯 추락했다. 지난 17일 두바이유는 배럴당 55.56달러로 전일 대비 0.94달러 하락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하고 있는 기름 값 하락세는 미미하다.
18일 한국석유공사가 제공하는 유가정보시스템의 정보를 바탕으로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최저가’ 휘발유 값을 계산해봤다. 국제유가가 30달러대까지 추가 하락하면 주유소 휘발유 값은 1308원으로 현재 휘발유 가격(지난 17일 기준 L당 1651.12원)보다 340원 내려가는 데 그칠 것으로 추정됐다. 지금보다 유가가 40% 하락해도 소비자가 실제로 주유소에서 사는 휘발유 가격은 20%가량만 내린다는 뜻이다. ‘L당 1300원대’가 소비자가 예상할 수 있는 최저 기름 값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국제유가가 30달러로 내려도 휘발유 값이 1308원에 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금 때문이다. 휘발유 값에는 여러 세금이 붙는다. 정액인 유류세(745원)+수입부과금(16원)+관세(원유가의 3%)+부가세(10%)가 포함된다. 실제로 국제유가가 30달러로 내려도 세금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국제유가가 50달러(62.7%)-40달러(65.5%)-30달러(68.6%)로 내려도 휘발유 값에서 차지하는 세금 비중은 반대로 점차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정유사나 주유소가 수익 확보를 위해 휘발유 값을 안 내리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세금 비중이 높은 국내 특성상 ‘반값’ 휘발유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그 어떤 전문기관도 내년도 유가 전망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유업체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 국제유가가 떨어지면 회계장부에 반영되는 ‘재고’ 평가액이 깎여 손실 폭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정유업계 1위인 SK에너지의 모(母)회사인 SK이노베이션은 ‘창사 이래 두 번째 적자’를 목전에 두고 있다. 국제유가가 1달러 떨어지면 SK이노베이션엔 470억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한다. 이 가운데 재고 평가 손실분은 350억원, 정제마진 하락에 따른 손실액은 120억원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올 4분기에만 국제유가가 17달러 이상 하락해 SK이노베이션은 8200억원대의 손실을 떠안게 된 셈”이라고 분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SK이노베이션은 매주 비상경영회의까지 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비용 절감을 위해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을 낮추고 SK종합화학·SK루브리컨츠 등 자회사별로 본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유업계 4위인 현대오일뱅크는 아예 ‘비(非)정유’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이 회사가 선택한 신사업은 ‘카본블랙’으로 불리는 프린터 잉크의 원료. 타이어나 고무의 강도를 높이는 데 들어가는 배합제로도 쓰여 부가가치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원유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활용해 카본블랙을 생산하고, 이를 합작 파트너인 독일 업체를 통해 세계 시장에 판매하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대산 공장 내에 연간 16만t을 생산할 수 있는 합작공장을 세워 연간 3000억원의 매출을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