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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벨 백소명 기자][NYT 소르킨, "증시에서 돈을 벌 수 없는 펀더멘털이 문제"]
금융시장에 유행하는 말이 있다. '신뢰의 위기'다. 나이트캐피탈이 재현한 알고리즘트레이딩의 글리치 악몽은 신뢰의 위기에 '위기'를 더했다. 2010년 5월 6일, 기계적 오류에 의한 뉴욕증시 순간대폭락(flash crash)은 공교롭게도 약세장으로 이어져 이후 2달간 S&P지수가 10% 이상 하락을 경험했다. 전산장애로 얼룩졌던 페이스북의 IPO도 결국 주가 반토막으로 이어졌다.
다행히도 나이트캐피탈 사태가 아직까지 '곰의 귀환'을 불러오지는 않았다. 증시 하락의 책임을 컴퓨터 오작동에 묻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비평가들의 목소리는 높다. NGO인 배터마켓(Better Markets)의 대표 데니스 켈레허는 LA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나이트캐피탈 사태를 두고 '부의 파괴행위'라 언급하며 "미국 자본시장이 얼마나 취약한지, 왜 투자자들이 전례 없이 증시에서 빠져나가는지를 보여준다"고 논평했다.
상당수 전문가들도 지난 한 해 뮤추얼펀드에서 13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유출됐다는 통계를 언급하며 때맞춰 발생한 나이트캐피탈 사태와 결부,증시가 위기에 빠졌다고 둘러대고 있다.
하지만 뉴욕타임즈 칼럼리스트 앤드류 로스 소르킨은 증시부진의 원인을 좀더 단도직입적으로 진단한다.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한 세대가 다 가도록 투자자들은 주식에서 돈을 벌지 못했다. 나이트캐피탈의 소프트웨어가 투자자들의 신뢰에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지만 '투자자들이 증시에서 떠나는 10가지 이유'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지난주 핌코의 빌 그로스는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주식 숭배의 시대는 갔다(the cult of equity is dying)"고 썼다. "한 때 푸르렀던 사시나무 잎이 콜로라도의 가을을 노랗게, 붉게 물들이는 것처럼 '장기가치투자(stock for the long run)'에 대한 투자자들이 기대도 시들어 간다."
그렇다면 왜 투자자들이 증시를 방관하게 된걸까. 실업률 상승과 유로존 부채위기, 재정절벽 우려, 미국과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 등 너무나 많은 이유가 있다.
미국 기업들이 2조 달러가 넘는 현금을 깔고 앉아 투자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워렌 버핏은 투자자들에게 "남들이 탐욕스러울 때 신중하고 남들이 신중할 때 탐욕스러워야 한다"는 유명한 투자철학을 설파했지만 이번에는 아닌 것 같다. 헤지펀드들도 손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헤지펀드의 대부 무어캐피탈의 루이스 무어 베이컨은 지난주 투자자들에게 큰 돈을 놓을 곳이 없다며 '투자금 20억을 돌려드린다'는 촌극을 빚었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은 '기계 결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람들이 컴퓨터를 비난하고 나선 것이 이번만은 아니다. 1987년 시장붕괴 몇 달후 뉴욕타임즈는 '개인투자자들이 프로그램트레이딩에 난도질 당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돈의 흐름은 투자자들이 심리 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ICI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뮤추얼펀드에서 인출된 자금은 1710억 달러다. 이 돈은 어디로 갔나. 채권이다. 약 2080억 달러가 같은 기간 채권시장으로 들어갔다.
투자자들이 '신뢰의 위기'에 처한 것은 맞지만 그 대상은 컴퓨터가 아니다. 투자 결정은 더 힘들어지는데 시장은 결코 자기편이 아니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있다. 내부자거래와 시장조작 스캔들 같은 월가의 탐욕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전자트레이딩시스템을 내다버리며 컴퓨터를 탓할 일이 아니다. 순환이 아닌 구조 차원에서 경제문제를 접근하는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주식 또한 손실보다 수익의 확률을 높이는데 장기투자가 유효한 전략이라는 신뢰회복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