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재고량 넘쳐나고 올해 최악 가뭄으로 물 부족…물 덜 드는 대체작물 경작 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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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가장 극심한 가뭄으로 허덕이고 있는 태국의 농촌 곳곳에서 논이 말라 쩍쩍 갈라져 있다. 급기야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한 태국 정부는 농민들에게 다른 작물을 심으라며 적극 권유하고 있다(사진=블룸버그뉴스). |
[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급증한 쌀 재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태국 정부가 농민들에게 다른 작물에 눈 돌리라며 적극 권유하고 있다.
세계 최대 쌀 수출국인 태국은 지난 10년 동안 농민들에게 대체작물 재배를 권유해왔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급기야 물 부족 사태와 쌀 값 하락에 직면한 태국 정부는 농민들에게 돈까지 줘가며 쌀 농사가 아닌 양계 등 다른 돈벌이를 가르치고 있다.
20년 만에 가장 극심한 가뭄으로 허덕이고 있는 태국의 농촌 곳곳에서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이미지가 인쇄된 깃발을 흔히 볼 수 있다. 국왕의 이미지 옆에는 "물을 현명하게 사용하자"는 구호가 적혀 있다.
아피삭 탄티보라웡 태국 재무장관은 최근 블룸버그통신과 가진 회견에서 "가뭄으로 농민들이 고통 받게 될 것"이라며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농민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려 정부가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콕 소재 TMB뱅크는 일찍이 지난 2월 엘니뇨가 몰고 온 가뭄으로 태국 경제에 840억바트(약 2조7450억원)의 손실이 생길 듯하다고 내다봤다. 자동차ㆍ가전기기ㆍ농기계 같은 내구재 수요가 주는 것은 물론이다. 가전기기 메이커 싱어타일랜드에서부터 농약 제조업체 파토화학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기업의 순이익도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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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정부의 농민 교육 프로그램은 농민들에게 살아남는 데 필요한 참신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2014년 후반 가뭄이 시작된 이래 농가 소출은 10분의 1로 줄었다. 그나마 이도 쥐가 갉아먹기 일쑤다.
지난해 태국 군사정부는 농민들에게 쌀보다 물이 덜 필요한 대체작물 경작을 권유하고 부채상환 기한을 연장하는 데 112억바트나 배정했다. 다음달 1일(현지시간)부터 1년 동안 물가를 안정시키고 농민을 재교육하는 데 예산 101억바트가 쓰일 예정이다.
태국인의 주식인 쌀을 경작하는 데는 밀이나 옥수수를 경작할 때보다 물 2.5배가 더 필요하다. 태국 중부 평야의 주요 수원(水源)인 푸미폰 댐과 시리킷 댐은 수위가 1994년 이래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태국 정부는 다음달 시작되는 벼 경작 시즌에 쌀 생산량을 2700만t으로 줄였으면 하고 바란다. 2700만t이라면 지난 5년간의 연평균보다 25% 적은 양이다.
태국의 쌀 농가들은 10년 넘게 보조금을 지원 받았다. 탁신 친나왓과 그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은 농민의 몰표 덕에 총리로 재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조금 탓에 쌀 생산량이 20% 늘어 현재 재고가 1780만t을 기록하게 됐다. 엄청난 쌀 재고량은 정부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태국의 쌀 생산량이 줄면 국제 쌀값을 억누르고 있는 세계적인 공급 과잉 사태는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농민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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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010년 태국 정치에서 중심 역할을 담당한 것이 쌀 농가들이다. 농민들은 보조금 지원에 나선 친나왓 가문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친나왓 가문이 이끈 연립정부는 2001년 이래 치러진 총선마다 승리했다. 하지만 두 번이나 군사쿠데타로 축출됐다.
군부 지도자로 현 총리이기도 한 프라윳 찬오차는 농민들에게 쌀 감산을 강조해왔다. 기온이 최고조에 이르고 몇 달 동안 비가 오지 않은 요즘 군사정부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농민들에게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3개월에 걸친 15일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농민에게는 하루 200바트가 지급된다. 교육 이수 신청자가 예상 밖에 많아 추첨으로 선정한다.
태국의 법제도ㆍ정치와 관련해 여러 책을 낸 작가 데이비드 스트렉퍼스는 "일부 농민의 경우 자기가 처한 경제상황에 좌절하고 있지만 군사정권 아래서 자기 감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길이 별로 없다"며 "군사정부는 영세농들을 큰 위협세력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태국 정부는 경제가 위축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사회안정을 해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