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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지들 '아우성'에 파생상품 거래세 도입 유예
"세계 1위 파생상품 시장 위축" 엄살… "과도한 팽창이 오히려 위험" 반론도 만만찮은데
허완 기자 | nina@mediatoday.co.kr
새누리당과 정부가 파생금융상품거래세 도입을 2016년 이후로 미루기로 1일 합의했다. ‘거래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업계의 반발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 과정에서 경제신문을 비롯한 대다수 언론들은 업계의 대변자 역할을 자임했다. 그러나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된 파생상품 시장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되짚어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새누리당과 기획재정부 등 정부는 이날 오전 당정협의를 갖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세법개정안에 의견을 모았다.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부의장은 “파생금융상품거래세의 경우 거래 위축 등 부작용이 예상돼 시행 시기 등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달 초 파생상품거래세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새누리당 진영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17일 0.001%의 세율을 적용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 머니투데이 8월1일자 22면
이처럼 파생상품거래세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자 증권·투자업계는 즉각 반발해왔다. 거래가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파생상품 유동성이 줄어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물시장 침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업계는 ‘글로벌 자금 유출’이 이어져 현재 세계 1위 규모인 우리나라 파생상품 시장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를 폈다. 세수 확대 효과가 크지 않아 제도 도입의 실효성이 낮다는 분석도 내놨다.
경제신문들은 이 같은 업계의 ‘아우성’을 충실히 전해왔다. 머니투데이는 8월1일자 22면에서 “파생거래세가 도입되면 파생상품시장뿐 아니라 현물시장 위축도 불가피하다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인 의견”이라고 전했고, 서울경제는 같은 날 “시장이 걱정하는 것은 ‘거래량 위축’이 가져올 2차 쇼크”라고 보도했다. 심지어 증권업계가 ‘고사위기’에 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여타 경제지들도 ‘업계’의 입을 빌어 반대 의견에 무게를 실었다.
▲ 아시아투데이 7월12일자 7면
그러나 ‘통제’라는 관점으로 접근한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세수확보 차원도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금융 안정성을 확립하는 차원에서도 거래세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시복 목포대 교수는 “시장의 위기가 시스템으로 번질 때 그걸 누가 감당하느냐”며 ”세금을 도입해서라도 거래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변동성이 크고 투기적 요소가 강한 파생상품시장을 적절히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생금융상품시장의 거래규모를 적극적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금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생산부문으로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금융거래를 일정하게 위축시킬 필요가 있다”며 “생산부문으로부터 가장 먼 금융 영역이 파생상품시장”이라고 지적했다.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은 “파생상품 시장이 산업현장, 에너지·곡물·환율시장을 교란시키는 위험 요인으로 기능하고 있다”며 “파생금융상품 시장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고 지적했다.
규제일변도의 정책이 증시 둔화에 한 몫 하고 있다며 파생상품거래세 도입 논의를 엮어서 보도한 언론도 많았다. 한국거래소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0%, 수수료 수익은 2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순이익도 60% 가까이 급감했다. 파생상품시장 거래대금도 7월 들어 지난해 8월 하루 평균액과 비교해 35.4%나 급감했다. 그러나 이는 유로존 재정위기 지속과 전 세계적 경제위기로 투자심리가 위축된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분석이다.
▲ 헤럴드경제 7월11일자 21면
눈에 띄는 대목은 또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7월20일자 사설에서 “그나마 세계 금융시장에서 우리가 내세울만한 건 파생상품 밖에 없다”고 주장했고, 아주경제는 같은 날 7면에서 “우리나라 파생상품 시장은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 말미암아 거래량 ‘1위’ 자리까지 다른 나라에 뺏기며 뒷걸음질 치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 최대 규모와 거래량을 자랑하는 국내 파생상품 시장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파생상품시장 거래량 세계 1위가)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중심에는 파생금융상품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거래세와 규제를 도입해 투명성을 높여 오히려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제고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금민 운영위원장은 “지금 같은 금융위기 시기에 금융거래가 많은 건 경제전체에 결코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홍성준 국장은 “순수한 목적의 헷지(hedge) 상품을 제외하고는 파생상품시장의 순기능이 사라졌다”며 “파생금융상품시장이 전체 국민경제나 산업보다는 투기자본에게만 이득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예 “사회적인 정당성 논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과대 대표되고 있는 금융·투자업계의 이해와 이를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언론의 벽을 넘어, 한국경제에서 금융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 한국경제 7월31일자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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