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 정유부문 모두 적자…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
정유사들이 석유제품을 수출해 올 상반기 ‘수출왕’ 자리에 올랐으나 정작 기름사업에선 적자를 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지난 2분기 정유부문에서 모두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 원유가격 급락으로 재고평가손실이 커졌고 원유가격과 제품값의 차이에서 나오는 정제마진도 떨어져서다. 정유 4사가 모두 정유부문에서 영업적자를 기록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2009년 3분기 이후 처음이다.
○정유 4사 국내 기름 판매 적자
정유사들은 2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주력 사업인 정유부문의 추락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석유화학, 윤활유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지만 전체 매출의 70% 이상은 정유부문이 차지하고 있다. 4사 중 현대오일뱅크는 원유정제로 올리는 매출이 전체의 90% 이상이다.
신한금융투자는 SK이노베이션의 2분기 정유부문 영업적자가 1570여억원에 달한 것으로 보고 있고 삼성증권은 GS칼텍스 정유부문이 1130여억원의 영업적자를 본 것으로 분석했다. 에쓰오일이나 현대오일뱅크도 규모만 다를 뿐 적자 상황은 마찬가지다. 정유 4사의 2분기 영업적자 규모는 5000억원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와 정제마진이 2분기 들어 크게 하락한 탓이다. 지난 3월만 해도 배럴당 120달러를 웃돌던 두바이유는 지난달 말 90달러까지 떨어졌다. 정제마진은 1분기 평균 배럴당 8달러대였다가 5월 이후 5달러대로 떨어졌다.
국제 원유가격이 제품을 생산해 출하할 때 계약가보다 크게 떨어지면 정유사들은 손실을 보는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 휘발유 등 석유제품 국내 판매가격은 싱가포르 현물시장 거래가를 반영해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응주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유로존 위기로 유가가 하락했고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라 석유화학 시황이 악화해 정제마진이 떨어졌다”며 “석유화학이나 윤활유 등 비정유부문 실적은 크게 변화가 없어도 정유부문의 이익이 급감해 정유부문에서 적자를 기록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업계 ‘내우외환’
정유업계는 안팎으로 어려움에 빠져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 수요마저 주춤하고 국내 시장은 알뜰주유소 지원 강화, 혼합판매 허용 등 정부의 기름값 대책으로 압박이 크기 때문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실적이 아직 나오진 않았으나 안 좋은 것은 사실”이라며 “올 1분기에도 정유부문 실적이 저조했고 2분기마저 침체돼 금융위기로 최악의 실적을 낸 2009년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은 2008년 정유부문에서 사상 최대 수준인 2조633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가 금융위기 이후 유가 폭락으로 2009년 185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1997년 석유산업 자유화 이후 첫 영업적자였다.
다른 정유사 관계자는 “지난해 유럽위기에도 버텨줬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도 수요 부진이 가시화하면서 낙관할 수 없다”며 “안으로는 국내 시장 포화와 정부 압박이 이어지고 밖으로는 경기침체로 좀처럼 실적개선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한편 올 상반기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제품 수출액(잠정)은 272억78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1.5% 증가해 2위인 선박류(255억달러)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 정유사 재고평가손실
산유국에서 원유를 들여오면 수송부터 생산까지 1개월가량이 걸린다. 원유를 들여올 때 계약하는 만큼 이 사이 유가가 떨어지면 장부상 재고가치가 하락해 정유사가 떠안게 되는 손실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