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우리나라 채권 운용역 대부분은 야후 메신저로 거래합니다.예전엔 전화로 많이 했는데 2000년 대초부터 야후 메신저로 거래하는 것이 일반화했습니다. 한마디로 채권 거래는 소수의 전문거래라는 특성상 한국거래소가 개설한 장내 시장이 아닌 장외 시장에서 매매가 이뤄지는 데 그 수단이 야후 메신저인 것이지요. 이 사설 메신저는 한 달에 500조원(전체 채권 거래의 80%)이 거래되는 장외 채권시장 정보 교류의 핵심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H 증권사의 P 운용역은 “채권은 거래 단위가 크고 상품이 종목, 만기, 이자율, 할인율 등에 따라 너무 다양하다”면서 “일정한 규칙과 규격이 없는 장외시장이 발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메신저로 상호 접촉해 매수자와 매도자가 어떤 형태의 거래도 가능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해외에서는 블룸버그 단말기 메신저를 많이 이용한다고 합니다.
주식 시장에선 보통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의해 형성된 가격으로 주식이 팔리지만, 채권 거래에선 선후배와 지인, 브로커 등 인맥을 활용해 적당한 매수자를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운용역이 5000억원어치 채권을 급하게 팔아야 한다면 야후 메신저에 등록된 선후배, 지인들에게 쪽지를 날립니다. 이런 대규모 물량을 시장 원리에 맡기면 오히려 매매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라고 매니저들은 얘기합니다.
이럴 땐 매도자와 매수자가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적당히 협상을 잘 해야 하는 데 이럴 땐 기계적인 HTS보다는 메신저를 통한 대화가 더 제격이라는 것입니다.
S사 H 애널리스트는 “주식 거래 중 ‘블록딜’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거래에선 기업과 기관이 별도 협상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면서 “채권 거래는 아는 사람이 있고 친구가 있는 ‘인간 HTS’가 필요한 시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채권 거래엔 자산운용사, 보험사, 은행사, 증권사, 연기금 등에서 근무하는 채권 운용역들이 참여하는 데 이들은 대부분 상대 출신의 선후배로 얽힌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숱한 메신저 중에 왜 ‘야후 메신저’일까요?
여기엔 해석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얘기가 나옵니다. 우선 인터넷 대중화 초창기에 주름을 잡았던 회사가 야후인데, 야후가 왕성하게 활동할 무렵 우리나라 금융계도 정보기술(IT)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정교한 분석도 있습니다. 야후 메신저가 여러 메신저 중 단체 메시지 전송기능이 있는 첫 메신저였다는 것입니다. 야후의 단체 쪽지 기능은 하루에도 몇번씩 매수매도 호가를 불러야 하는 운용역들을 사로잡았고 이후 업계에 널리 퍼졌다는 설명입니다.
온갖 신종 메신저가 나오고 금융투자협회에서도 2010년 4월 매매 거래시스템(프리본드)도 내놓았지만, 10년 넘도록 야후 메신저가 채권 거래 시장에서 생존하는 이유는 인간 네트워크와도 얽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사설 메신저를 이용하면 금융 사고가 터지지 않을까요? 사설 메신저이다보니 담합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채권 거래 관계자들은 회사에서 메신저 대화 내용은 다 기록하고 전화 통화도 다 녹취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놓아 금융사고는 별로 터지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